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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金淑姬) 여사는 21세 때 달성군 노공면 곽씨 집안 맏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결혼 후 부부가 협력하여 노시부모를 모시고 시남매 4명과 슬하 2남 2녀를 키우며 농사에 힘써 왔으나, 많은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 74년 12월 현 거주지에 이사를 하여 왔다.
불행하게도 남편께서 이듬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시부께서 자식 잃은 충격으로 와병(臥病)하게 되었다.
김(金) 여사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새길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시부의 병구완을 위해 병·의원을 찾아 좋다는 약을 다 구해 지극정성으로 간병한 보람도 없이 3년 만에 돌아 가셨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모마저 몸져 눕게 되니 여자 혼자의 몸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시모 병수발에 지칠대로 지쳤으나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 없이 시탕은 물론 평소 시모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드시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있다 한다.
시모마저 돌아가시자 자신의 불효를 탓하며 정성을 다하여 상을 치루었다.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아 열심히 장사하며 시남매와 슬하 2남 2녀 모두 출가시켜 올바른 사회인(社會人)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시형제는 물론 일가친척에게도 우애를 돈독히 하여 칭찬을 받고 있으며,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 또한 투철하여 불우한 이웃 노인집을 찾아 밑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말벗이 되어 소외감을 달래 주고 있다.
또한 최근까지 ‘인성의 집’(무료급식소)을 찾아 다니며 중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노숙자를 위해 밥짓기, 설거지 등을 봉사활동에 앞장서 활동하고, 어둡고 환경이 불량한 뒷골목에 사비로 방범등도 설치하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행을 하고 있어 이웃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한 효부이자 선행자이니 그녀의 여생에 행운이 가득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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