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김진국(金鎭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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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2004년 4월 21일)
선행상(善行賞)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선행(善行) 김진국(金鎭國) 52세

김진국(金鎭國) 씨는 1952년 경북 영주군 문수면 수오리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후덕하여 부모님의 귀여움을 받고 성장하여 1974년에 윤일례(尹一禮) 씨와 결혼하여 3녀를 둔 다복(多福)한 삶을 살아왔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오랫동안 거주하던 청송군 청송면 월막리를 떠나 1992년 대구시 남구 대명동 현 주소지로 이사와 이발소를 운영하며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며 가족을 사랑으로 감싸 생활해 왔다,

그러나 처는 양장점을 운영하며 남편의 어려운 점을 덜어 주었으나 1993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움직이지도 못한 채 병상(病床)에 눕게 되었다.

더욱이 모친이 돌아가신 후 부친마저 암투병으로 인해 거동이 어려워 대·소변을 받아 처리해야 하는 등 2명의 병간호를 하게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형님이 부친을 모시고 가서 병간호를 하게 되었으나 몇 달만에 부친이 영면(永眠)하시게 되는 등 어려운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처를 위해 1년 동안 병간호를 위해 이발소 문을 닫았으며, 또한 가산을 없애면서 여러 병원 진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 중풍에 좋다는 약을 구해 지극정성으로 간병에 최선을 다해 왔다.

이렇게 간호환 관계로 처의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오른쪽 팔다리가 완전 마비로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또한 언어장애(言語障碍)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인은 그나마 처(妻)의 상태가 호전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하루 세 끼 식사를 손수 준비하며, 세수, 세탁도 직접하여 처의 재활(再活)을 위해 처를 부축하여 동네를 40분 정도 운동을 시키며 오전 10시, 오후 3시 하루 두 번씩 재활훈련에 열성적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김진국 씨는 처가 쓰러진 지 10년 동안 한결같이 본인의 삶을 희생하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자는 약속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

경제문제로 이혼이 급증하는 현 사회에서 이러한 행위는 훌륭한 교훈이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므로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