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이선희(李善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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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2004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경산시 압량면
효부(孝婦) 이선희(李善嬉) 34세

이선희(李善嬉) 여사는 대구 고산에서 성장하여 농촌으로 시집갈 때 꽃다운 나이 22세였다.

그 당시 시가(媤家)는 소유한 전답(田畓) 한 평 없이 농촌 생활을 하는 어려운 상태였다.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남편만 믿고 시집을 와 보니 집안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72세 된 시조모님은 중풍, 노망, 그리고 시아버님 또한 중풍환자였기에 병수발, 간호에 지극정성으로 오늘까지 해 왔다.

어렵고 힘든 농가에서 생활의 보탬이 될까 남의 땅에 먹거리라도 해결하기 위해 틈틈이 농사일에 지친 몸으로 집에 오게 되면 시조모님, 시아버님의 용변을 본 냄새가 온 집안에 펴져 있지만 고된 몸으로 깨끗이 청소하고 웃으면서 어른을 대하는 공경심과 효심이 뛰어났다.

극진한 병간호에 날마다 완쾌를 빌었지만 시조모님은 7년 전 1999년에 사망하시고 이제 시아버님만 돌보시면 되겠구나 했더니 설상가상으로 그 해 가을에 시어머님께서 만성골다공증(慢性骨多孔症)으로 거동불능으로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게 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남편의 따뜻한 위로와 아무 탈 없이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자식들 때문에 이(李) 여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용변치우기, 목욕시키기에 너무도 고된 일이었지만 이를 감당하면서 12년간 계속 간호, 치료에 정성을 다하였다.

웃어른을 모시고 남편 내조에 자식 키우는 일이야 이(李) 여사의 당연한 몫이라 할지 모르지만 현대사회에 보기 드문 효부라고 이웃 주민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이(李) 여사는 젊은 꽃다운 시절에 시집와 온갖 풍상과 우환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밝고 씩씩하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손부 며느리 역할을 해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고 효행을 실천하여 타의 모범이 되어 많은 사람의 칭찬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