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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영(金圭榮) 효녀는 평안북도 군산면 모동(某洞)에서 출생하였으며 해방이 되던 13세 때 부모, 오빠, 남동생 등 일가족 모두 남한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가족 모두 일가친척도 없고 직장도 없어 생계가 막막해지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오빠와 남동생은 각각 객지(客地)생활을 하고, 김규영 노처녀(老處女)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부친께서는 서당(書堂)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받은 품삯으로 세 식구가 겨우 먹고 살 정도였으나 6.25전쟁 직후 질병과 과로로 인해 사망하자 갈 곳이 없는 늙은 시모님은 오빠 집에서 임시 거주하고 김(金) 여사는 객지로 나가 남의 식당에 파출부로 일을 하여 생계를 연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해 고부(姑婦)간의 갈등으로 오빠가 노모를 부양할 형편이 되지 않자 김(金) 여사는 월세방을 따로 얻어 노모를 모시고 32년간 긴 세월 속에서 효도하며 살아왔다.
어렵게 살면서 연로한 노모를 부양하다 보니 결혼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직장도 구하지 못해 생계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93년부터 정부의 도움으로 생활을 해 오고 있으며, 김규영 할머니 본인도 연세가 70의 고령으로 현재 녹내장, 갑상선 등 노환(老患)에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99세인 노모의 병수발로 본인의 질병 치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 등 지극정성으로 모친을 모시고 효도하며 생활하니 이웃들로부터 효의 근본사상을 깨우쳐 주고 있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칭송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근래에 친 노모의 질병인 치매가 심해져 한시도 곁을 떠날 수가 없어 출입도 못하고 노환에 심장기능이 나빠 신진대사가 원활치 못해 치료가 힘들어지자 민간요법 등 온갖 방법을 다해 치료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욱 안타까워 하면서 백방으로 간호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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