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박태숙(朴胎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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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2004년 4월 21일)
효행상(孝行賞)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효부(孝婦) 박태숙(朴胎淑) 45세

박태숙(朴胎淑) 여사는 꽃다운 나이 20세에 세상물정(世上物情) 모르고 중매혼(中媒婚)으로 장남인 남편 차동형(車東亨) 씨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할 당시 맞선을 보기 위해 만난 사람은 시모가 아닌 시부와 시누이였다.

통상적으로 시모되실 분이 선을 보는 것은 우리 풍속의 관례였던지라 시모가 나오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기고 그 사유를 물으니 다리가 조금 불편한 관계로 참석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일시적으로 조금 다친 것으로 알고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시모는 막내 시누이를 낳은 직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근육마비(筋肉痲痺)로 양다리를 전혀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뒤 시모는 자리보존을 하여 누군가 부축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일어나고 앉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였는데, 20세 약관(弱冠)의 나이로 시집을 간 박(朴) 여사는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남몰래 며칠밤을 눈물로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주신 친정부모도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며 자신의 처지를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날부터 시모 모시기를 정성껏 봉양하며 효도하면서 살아 왔다.

결혼해서 50세에 이르기까지 놀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이를 모두 생각지 않고 가정 내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시모의 대·소변 처리는 물론이거니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누워 지내게 된 후 기도를 드리러 사찰(寺刹) 출입이 잦던 시부가 마침내 스님으로 출가한 뒤부터 시모의 모든 일상생활은 전적으로 박(朴) 여사가 책임지고 처리해야만 했다.

방 안에서 생활하시는 시모가 행여나 갑갑해 하실세라 바깥출입 못하는 시모님의 귀와 눈이 되어 주고자 무척 노력하고, 세상 이야기를 시모에게 알려 드리기를 25년간을 한결같이 수족(手足)이 되어 극진히 봉양하고 간호하면서 남의 며느리 된 도리를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