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변선희(邊仙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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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1962년 2월 24일)
독행상(篤行賞)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 남촌(南村)
독행(篤行) 변선희(邊仙姬) 41세

6.25동란 때 남편을 잃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세 자녀를 알뜰하게 길러오고 있다. 

남편이 피난 도중 병을 얻어 숨졌을 때 세 자녀는 8세 미만의 어린애들이었다. 생활의 터전이 없던 변(邊)씨는 세 자녀를 훌륭하게 길러 죽은 남편의 유업(遺業)을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향을 등졌다. 살아보겠다는 굳은 의지 하나만으로 시작한 잡화행상은 그녀의 노력에 따라 많고 적은 이문을 남겨주었다. 

치약 하나 비누 하나를 팔기 위해 무거운 잡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험준한 산길을 하루 1백여 리씩 걸어 다녔다. 「나이롱」 옷이 한창 유행했던 3년 전에는 하루 1천 원 이상의 벌이를 하는 재미를 보기도 했다. 발이 부르트고 머리가 빠지는 것처럼 아파 왔지만 아이들이 하루 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통을 이겨냈다. 

10년째 계속하고 있는 잡화행상으로 이제는 쓰러져가는 초가이긴 하지만 내 집을 마련했으며 세 자녀는 중학교 이상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무일푼에서 가산을 일으킨 변(邊)씨의 성실함은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