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조원주(曺元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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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1962년 2월 24일)
독행상(篤行賞)
영천군(永川郡) 화산면(花山面) 연계동(蓮溪洞) 607
효부(孝婦) 조원주(曺元周) 35세

6.25 동란 때 노무자로 출정(出征)한 남편은 노시모(老媤母)와 세 자녀를 남겨둔 채 전사(戰死)했다. 

얼마 되지 않는 농토로는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품팔이와 삯바느질로 끼니를 벌어야 했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노시모(老媤母)에 대한 효성(孝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남자가 없는 가정은 흐트러지기가 쉬웠으나 조(曺)씨는 자식을 엄하게 다스려 할머니에 대한 효심(孝心)을 따르도록 했다. 

그녀는 슬픔도 기쁨도 느낄 겨를 없이 개미처럼 일만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그녀의 시모(媤母)에 대한 효성(孝誠)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식사 때 반드시 시모(媤母)의 밥상을 따로 마련해 어렵게 마련한 반찬에 아이들이 덤빌 수 없도록 했으며 밤에는 자리를 잡아 주고는 30분간씩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가난한 그녀에게는 시모(媤母)의 마음을 펀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행(孝行)의 가장 손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 시모(媤母)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정성으로 마지막 초상 범절을 갖추어 장례를 치러 마을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