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박복이(朴福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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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1962년 2월 24일)
독행상(篤行賞)
월성군(月城郡) 안강읍(安康邑) 양월(陽月) 2리(里)
효부(孝婦) 박복이(朴福伊) 28세

18세에 김영광 씨에게 시집을 와 병든 시부모(媤父母)를 10년 동안 보살펴오고 있다. 

시부(媤父)는 젊었을 때 우연한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쓰지 못하는 불구자가 됐으며, 시모(媤母)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가난한 농가에 시부모(媤父母)가 모두 병석에 눕게 돼 어려운 살림은 더욱 쪼들리게 됐다. 그래도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나무를 해서 팔거나 품팔이로 끼니를 굶지는 않았다. 

남편의 입대(入隊)는 생활을 막연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병든 부모(父母)와 임산으로 배가 부른 아내를 무일푼으로 남겨둔 채 떠날 수 없다면서 입대를 기피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박(朴)씨는 “집안은 모두 책임질테니 염려 말라.”며 남편을 입대시켰다. 

박(朴)씨는 남편 없는 집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으며 깊은 산속을 헤매어 땔나무까지 구해 와야 했다. 병든 시부모(媤父母)의 치료와 보살핌도 힘든 일이어서 남편이 없는 3년 동안은 밤낮으로 일해야만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시모(媤母)가 세상을 떠나자 朴씨는 자기의 효성(孝誠) 부족 탓이라며 일주일간을 금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