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희(李姬)

페이지 정보

본문

제5회(1962년 2월 24일)
독행상(篤行賞)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도계동(道溪洞) 96
열녀(烈女) 이희(李姬) 64세

남편 이원재(李源載)씨는 일제(日帝) 당시 상해(上海)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항일투사(抗日鬪士). 

결혼 1년 만에 조국 광복을 달성하겠다는 결심으로 홀연히 고향을 떠난 남편은 중국(中國)에 망명. 상해(上海) 임시정부를 위해 군자금 조달, 고위 일인(日人) 암살음모 등을 실행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해방의 기쁨도 맛보지 못한 채 한창 일할 나이에 숨졌다. 

남편이 숨진 지 2년만에야 사망 소식을 받은 이(李)씨는 낯선 땅에 묻혀 있는 남편의 유해(遺骸)를 모셔오겠다며 먼 길을 떠났다. 시부모(媤父母)나 친척들은 일본(日本) 경찰의 감시를 피해 여자의 몸으로 상해(上海)까지 먼 길을 가겠다고 나선 며느리를 보고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머리가 돈 것이 아니냐며 극구 만류했지만 단신으로 먼 길을 떠났다. 

일경(日警)의 눈을 피하기는 남자보다 여자가 수월했으나 먼 여행길을 여자 단신으로 다녀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해(上海)에서 남편의 유해를 찾기는 쉬웠다. 

한국인 독립투사 묘에서 남편의 유골을 수습해 3개월 여행 끝에 귀국할 수 있었다. 독립투사인 남편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먼 여행길을 다녀온 이(李)씨의 결단은 남편을 사모하는 일념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