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곽점순(郭点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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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1962년 2월 24일)
독행상(篤行賞)
달성군(達城郡) 화원면(花園面) 천내동(川內洞) 856
효부(孝婦) 곽점순(郭点順) 44세

6.25동란 당시 입대한 남편은 서울 수복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戰死)했다. 

남편의 전사 통지를 받은 시부모(媤父母)는 충격으로 몸져누운 채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3자녀를 거느린 곽(郭)씨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으나 몸져누운 시부모(媤父母) 때문에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게다가 사변 직후라 경작지가 폐허처럼 버려져 식량 구하기가 힘들었다. 

쌀 한 톨 없는 집에서 몸져누운 시부모(媤父母)를 공양하기 위해 대구(大邱) 시내에 나가 구걸 행각까지 벌여야 했다. 시부모(媤父母)는 며느리의 한결같은 위로와 보살핌에 힘입어 다시 회복됐다. 버려졌던 농토는 곽(郭)씨의 악착같은 관리로 다시 옥토(沃土)로 변했다. 

일부 무지한 농민들은 곽(郭)씨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농사일을 꾸려나가자 깔보아 경작지를 엉망으로 망가뜨리는 훼방을 놓기도 했다. 

그녀는 이 같은 많은 시련들을 모두 이겨냈으며 오히려 재산을 늘리고 노시부모(老媤父母)를 극진히 모셔 화목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올해는 장남(長男)을 대학에 진학시키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