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정혜련(鄭惠連)

페이지 정보

본문

제52회(2009년 4월 23일)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경북 구미시 봉곡동
효녀(孝女) 정혜련(鄭惠連) 21세

정혜련(鄭惠連) 씨는 고려 때 대사헌을 지낸 정온(鄭溫)을 시조로 하는 진양정씨(晋陽鄭氏) 우곡공파(愚谷公派) 23세손으로 경기도 광명에서 자영업을 하던 정인택 씨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간경화 및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해 드려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효녀이다. 1남 1녀 중 장녀인 정혜련 씨는 평소에도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간염을 앓고 계신 것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부모를 곧 잘 도와 든든한 맏딸 노릇을 하였다.

올해 50세가 되는 아버지 정인택 씨는 우연히 건강 검진을 통해 자신이 B형 간염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근 10여 년을 투병해 왔다. 경북 구미에 살면서 매달 한 번씩 대구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였으나, 병세가 차츰 악화되어 2001년에는 간경화 판정을 받았고 급기야 2006년에는 간암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엄청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치료를 위해 모든 방법을 써보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서 제시한 최후의 치료 방법은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하는 것뿐이었다. 가족이 의논하여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동생 원진 군이 아버지께 간을 이식해 드리기로 자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아버지와 장기 비율이 서로 맞지 않아 이식할 경우 기증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하였고, 결국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인택 씨는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마음이 한없이 복잡했다. 아버지로서 또 남편으로서 책임져야 할 일들이 태산같이 남아 있어 아직은 죽을 수도 죽어서도 안 되지만, 차마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자식의 생명을 담보하는 위험한 일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심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차라리 삶을 포기하고도 싶었다. 이때 정혜련 씨는 삶과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애잔함을 보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좋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신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리라 마음먹었다. 자신의 간을 아버지께 이식해 드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자라면서 큰 질병을 앓은 적은 없었지만, 또래의 다른 여학생들보다 체구가 작고 허약한 체질이라 수술이 가능할지 모두가 반신반의하였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버지의 장기와 조직 및 모양이 비슷하여 이식이 가능할 것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고, 8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마침내 성공적으로 간을 이식하여 아버지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 후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어지럼증과 구토증으로 물조차 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보다 아버지의 건강을 더욱 염려하였고 최선을 다해 준 의료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현재 아버지 정인택 씨는 가족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가정 살림이 상당히 어려워져 가족과 형제들에 대한 또 다른 죄책감으로 미안해하면서도, 이제 자식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는 만큼 건강이 좀 더 회복되면 못다 한 가장의 역할을 열심히 하리라는 기대와 꿈에 부풀어 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정혜련 씨는 요즘 지역에 있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고 있다. 수술 후 30cm가 훨씬 넘는 커다란 흉터가 가슴에 남았음에도 그는 그저 ‘아직은 쑥스러워 대중목욕탕에는 못 간다’라며 웃는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효심이 그 상처보다 더욱 깊고 짙은 까닭일 것이다. 그에게 이제 또 다른 꿈이 있다면, 부동산 중개사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격을 따고 아버지와 함께 조그만 사무실을 차려 독립하는 것이라고 하니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갸륵한 정성이 끝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