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춘태(金春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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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1964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상주군(尙州郡) 함창면(咸昌面) 신덕리(新德里) 774
효부(孝婦) 김춘태(金春泰) 34세

결혼 3개월 만에 입대한 남편은 그 해 연천(漣川) 전투에서 전사했다.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20살의 청춘과부가 된 것이다. 노시부모(老媤父母)는 장남을 잃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 눕게 돼 자기의 슬픔보다도 이들 시부모(媤父母)를 위로하는 일이 더 급했다. 

가난한 살림은 남편 전사 후 해마다 줄어들어 끼니를 잇기조차 힘겨워졌다. 노시부모(老媤父母)를 모시는 일 이외에 힘겨운 하루의 노동일은 그녀를 녹초로 만들었으나 시부모(媤父母)를 대하는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 명랑하고 활기에 차 있었다. 

이웃마을 사람들은 처녀나 다름 없는 몸으로 의지할 것 없는 시가(媤家)를 위해 희생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재혼을 권유하기도 했으며, 시부모(媤父母)도 때때로 며느리를 불러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으나 그 때마다 그녀는 「여자(女子)는 한번 결혼하면 시집을 위해 평생을 몸 바쳐 야 한다고 배웠다」며 웃으며 거절했다. 권유가 끈질기자 7년 전에는 시부모(媤父母) 몰래 전사한 남편과의 혼인신고를 마쳐 더 이상 재혼 권유를 못하도록 못 박았다. 그녀는 시부모(媤父母)를 알뜰하게 모시고 쪼들리는 재산을 일으키는 일이 자기의 남은 일생 동안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