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남기순(南基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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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1964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김천시 백옥동 527
효부(孝婦) 남기순(南基順) 37세

6·25 동란 때 입대한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은 南씨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전달받은 노시모(老媤母)는 충격으로 쓰러져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됐으며, 유일한 재산인 전답(田畓) 2두락(斗落)은 빚으로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알거지 신세가 됐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소화하기도 전에 병든 노시모(老媤母)익 치료와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흔하지 않는 일거리였으나 돈벌이라면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해내 시모(媤母)의 치료비와 생계비를 벌어들였다. 

반신불수의 시모(媤母)는 병을 치료해 주지 않는다고 며느리에게 가끔씩 횡포를 부리곤 했으나 시모(媤母)의 요구를 한 번도 거역한 일이 없다. 

어려움 속에서 틈틈이 절약한 돈으로 시모(媤母)의 치료약을 구입하고 시모(媤母)가 좋아하는 음식을 공양하곤 했다.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는 시모(媤母)를 위로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시모(媤母)를 등에 업고 시내를 돌면서 바깥 세상을 구경시켜드리거나 친척 집을 방문하고 있다.

남(南)씨의 효성(孝誠)은 김천(金泉)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알려져 그 동안 2회에 걸쳐 효부(孝婦)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