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최창화(崔昌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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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1966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봉화군 봉화읍 포저리
효부(孝婦) 최창화(崔昌花) 35세

6.25동란이 남편을 빼앗아 갔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김우원(金祐元) 씨와 결혼, 1남 1녀를 두고 단란한 살림을 꾸려가던 이 가정에 공산집단의 침략은 슬픔과 고통만 안겨 주었다. 남편 金씨는 빨갱이 들을 몰아내야 한다며 자진 입대하더니 51년 봄 장렬하게 전사했다. 

장님이었던 시모(媤母)는 아들 전사소식을 듣고 기절까지 하는 소동을 벌였으나 최(崔)씨는 앞으로 닥칠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는 방안에 열중, 슬픔을 극복했다.

그녀는 경작할 농토가 없는 가난한 농촌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하고, 다음 해 고향을 떠나 강원도 철암(鐵岩)에 정착했다. 

광산지대인 철암(鐵岩)에는 부녀자들까지도 광부로 채용하고 있어 일거리는 많았다. 

장님인 시모(媤母)에게 어린 자녀를 맡겨놓고 갱 속에서 하루 해를 보내는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고 우울했다. 

낙반(落磐) 사고는 이러한 불안한 생활 속에서 일어났다. 2개월간의 장기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나 그녀는 다리 한 쪽을 크게 저는 불구자가 돼 광부 일도 맡을 수 없게 됐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그녀는 삯 바느질과 품팔이로 가난한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