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무연(李武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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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1966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영일군 오천면 금광동
효부(孝婦) 이무연(李武連) 38세

불굴의 의지가 쓰러져가는 한 정통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남편은 연간 8회의 봉제사(奉祭祀)를 지내야 하는 경주 김씨(慶州金氏) 종가(宗家)의 장남이다. 

이 가문은 조부(祖父) 대(代)부터 퇴락하기 시작해 남편 대에는 전답 4백 평만 남은 몰락한 가문으로 바뀌었다. 

李씨가 19세에 시집을 왔을 때는 끼니조차 잇기가 벅찬 가난한 생활이었다. 

게다가 결혼 다음 해 남편이 입대해버려 李씨가 일을 해야 시모(媤母)와 5명의 가족을 꾸려나갈 수가 있었다. 

그녀는 서슴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힘겨운 농사일을 도맡아서 해냈으며 품팔이와 삯 바느질, 산나물 수집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녀는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시누이를 이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여고에 입학시켰으며 도중에 학업을 포기하겠다는 시누이를 격려하고 도와 졸업을 시켰다. 

신경통을 앓아온 시모(媤母)는 남달리 며느리에게 심한 구박을 하는 전형적인 촌노(村老)였다. 그녀는 시모(媤母)의 구박을 웃음으로 받으며 유일한 생계수단인 전답을 팔아 병을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제대한 남편과 함께 황무지 2천 평을 개간해 새 생활의 기틀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