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현수(李賢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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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1966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포항시 덕수동 914
효부(孝婦) 이현수(李賢秀) 63세

20세에 결혼하여 2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유복자(遺腹子)와 3명의 어린 시동생, 시부모(媤父母)를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화목하게 이끌어 온 효부(孝婦)이다. 

2두락(斗落) 밖에 안 되는 적은 농토로는 끼니마저 잇기 어려워 농사일 외에도 밤늦게까지 잡일을 맡아 외아들과 시동생의 교육비를 마련해야 했다. 

李씨의 고행은 농사일의 반은 거들어 주던 시부(媤父)가 어느 날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진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젊음을 가꾸고 외로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가장으로 병든 시부(媤父)를 보살펴야 하는 며느리로서 아들과 시동생들을 양육해야 하는 어머니로서 피눈물 나는 고생을 계속해야 했다. 

병든 시부(媤父)가 82세의 고령까지 여생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며느리의 극진한 효성(孝誠) 때문이었는데도 李 씨는 시부(媤父)가 타계(他界)하자 자기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3년 동안이나 자책(自責)했다. 

시모(媤母)의 중풍 발병은 시부(媤父) 타계(他界) 직후였으며 현재 3년째 李씨의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고 있다. 

지난해 환갑 때는 아들과 시동생들이 잔치를 벌이려 했으나 병든 시모(媤母)를 곁에 두고 잔치를 벌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