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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 났네, 이렇게 가난한 줄은 꿈에도.......거기다 또 시(媤)어머님마저 병석(病席)에 누워 계시니 이 일을 어떤담?" 이 말은 20여년전(餘年前), 황지수(黃智洙) 여사(女史)가 시집왔을 때, 시가(媤家)의 분위기(雰圍氣)를 감지(感知)하고 내뱉은 마음 속의 첫마디였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고 어려운 시련(試鍊)과 역경(逆境)을 싸워 이겨나가기로 굳게 결심(決心)한 후(後), 비록 가난은 했지만 열심(熱心)히 행복(幸福)이란 고지(高地)를 향(向)해 달음발질쳐 갔다.
그런데, 남편(男便)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농사(農事)에는 손끝도 대지 않고 매일(每日)같이 술타령이었는데, 술독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理由)는 찢어지는 가난 때문이었다.
"여보, 가난은 죄(罪)가 아니예요. 우리도 열심(熱心)히 땀 흘려 일하면 남들처럼 행복(幸福)의 문(門)도 열 수 있고, 번영(繁榮)의 열쇠도 찾을 수 있다구요."
황여사(黃女史)는, 남편(男便)의 탈선(脫線)이 너무나 안타까워 몇 번이나 이와 같이 좋은 말로 타일러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알코올 중독(中毒)자에 가까운 폐인(廢人)이 되어 몸져 눕는 처지(處地)에까지 전락(轉落)하고 말았다.
황여사(黃女史)는 모든 것을 외면(外面)해 버리고 당장 어디론가 가출(家出)을 해 버리고 싶은 충동(衝動)도 몇 번씩이나 느꼈지만 '천벌(天罰)을 받을 소리........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죽어도 이 집안에서 죽어야 한다.' 친정(親庭)으로라도 도망(逃亡)쳐 버려야겠다는 괴로운 심정(心情)은 순간(瞬間)뿐,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시모(媤母)님과 남편(男便)의 약(藥)값 마련을 위해 리어카 행상(行商)을 시작했다. 그러나 끝내 따뜻한 아내의 보살핌도 외면(外面)채 남편(男便)은 7년간(年間)이란 긴 병고(病苦)끝에 황여사(黃女史) 곁을 영원(永遠)히 떠나고 말았다.
황여사(黃女史)는 이제 죽은 남편(男便)에게 못다 베푼 정성(精誠)을 시모(媤母)님께 쏟기로 하고, 더욱 극진(極盡)히 모시면서 자녀(子女)들을 키워 나갔다.
시모(媤母)님의 병세(病勢)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져 드디어 대소변(大小便)까지 받아내야 했고, 밥도 일일이 떠먹여 줄 만큼 환자(患者)곁을 떠날 수 없는 지경(地境)까지에 이르렀지만, 혹시 남이 알까봐 일절 내색(一切內色)하지 않고 숨어서 눈물겹게 봉양(奉養)했다.
인근주민(隣近住民)들까지도 황여사(黃女史)가 대소변(大小便)까지 받아내야 하는 중환자(重患者)를 말없이 봉양(奉養)하고 있다는 사실(事實)을 전연(全然) 모르고 있을 만큼, 그의 숨은 효성(孝誠)은 오직 이 세상(世上)에서 하늘만이 알고 있었을까.
끝내 이런 딱한 사정(事情)이 세금징수(稅金徵收) 독려차(督勵次) 찾아온 동장(洞長)에게 발각(發覺)이 되어 비로소 불우(不遇)이웃돕기성금(誠金) 삼만(參萬)원을 받기도 했다.
비록 황여사(黃女史)는 어려운 환경(環境) 속에서 살아오고 있지만, 자녀(子女)들에게는 장(壯)한 어머니로, 그리고 병(病)든 시모(媤母)님에게는 나이팅게일 못지않은 천사(天使)와 같은 따뜻한 손길로, 오늘도 가족(家族)들을 뜨겁게 뜨겁게 포옹(抱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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