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은주(李銀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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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1984년 4월 18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직할시 북구 칠성동
효녀(孝女) 이은주(李銀珠) 30세

이은주양(李銀珠孃)은 평소(平素) 넉넉지 못한 가정(家庭)에서 태어나, 그의 동생 은희양(銀姬孃)과 더불어 지난 1976년(年)부터 전신마비(全身痲痺)가 된 채 병석(病席)에 누워 있는 부친(父親)을 알뜰히 보살펴 오면서, 쓰러져 가는 가정(家庭)을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 자랑스러운 여성(女性)이다. 

그 동안 부친(父親)의 병세(病勢)가 더욱 악화(惡化)됨에 따라, 생계(生計)에도 많은 위협(威脅)을 느낀 그의 모친(母親)은 행상(行商)에 나서서 끼니를 이어왔는데, 고(苦)된 행상(行商)과 남편(男便)의 중환(重患)으로 인한 충격(衝擊)으로 지난 1979년(年) 3월(月), 이들의 어머니는 그만 영원(永遠)히 돌아올 수 없는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들 두 자매(姉妹)는 하염없이 흐르는 슬픔의 눈물을 억제(抑制)하면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희 두 자매(姉妹)가 오늘부터 엄마 역할(役割)도 겸(兼)하면서 아버님을 모실 테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고 굳건히 병(病)과 싸워 이겨야 하십니다." 

이와 같이 말하면서 슬픔을 달랜 후(後) 그날부터 극진히 구환(救患)에 힘썼다. 

하루 몇 차례에 걸친 대소변(大小便) 처리(處理)에서부터 심지어 목욕(沐浴)을 시키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들 자매(姉妹)는 서로가 앞을 다퉈 부친(父親)을 지성(至誠)껏 봉양(奉養)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두 남(男)동생의 뒷바라지도 별세(別世)한 모친(母親) 못지않게 알뜰히 보살폈다. 

부친(父親)을 위한 효성(孝誠)이 오죽했으면, 때때로 이들은 "언니, 오늘은 제가 아버님을 돌볼 테니 푹 쉬어요."라고 동생이 말하면 "아니다, 오늘은 내가 아버님을 보살펴 드릴 테니 네가 쉬도록 해라." 이와 같이 서로가 앞을 다툴 때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리 만큼, 이를 두 자매(姉妹)의 갸륵한 효심(孝心)은 이웃 주민(住民)들까지 감격(感激)의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 후(後) 언니인 은주양(銀珠孃)은 가족(家族)들의 생계(生計)를 위해 직업전선(職業戰線)에 뛰어들었고 그 대신(代身) 동생인 은희양(銀姬孃)은 아버지의 간호(看護)와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전심전력(全心全力)하는 등, 두 자매(姉妹)는 그야말로 합심협력(合心協力)해서 어려운 가정(家庭)을 인내(忍耐)와 용기(勇氣)와 근면(勤勉)으로 이끌어 나갔다.

이들의 효성(孝誠)을 지켜본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은 한결같이, "나이 30세(歲)가 되도록 시집갈 생각은 안 하면서 언니, 동생이 한 마음이 되어 지극(至極)한 효성(孝誠)을 바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질 뿐이다. 옛날 소설(小說)에 나오는 심청(沈淸)이를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흐뭇해질 뿐이다."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이들의 효성(孝誠)을 극찬(極讚)하였다. 

은주양(銀珠孃)의 두 남(男)동생도 모두 고등학교(高等學校)를 거쳐 이제 사회(社會)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오늘도 부친(父親)의 병상(病床)에 꼬박 지켜 앉아서 서로가 번갈아가며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있는 이들 자매(姉妹), 누가 보나 "사랑의 천사(天使)였고 거룩한 '백의(白衣)의 천사(天使)' 그것이었다. 결혼(結婚)은 언제쯤 할 계획(計劃)이냐는 물음에 은주양(銀珠孃)은 이와 같이 대답(對答)을 했다. 

"와 카능교? 난 이미 우리 아버지와 결혼(結婚)했다카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