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차주화(車柱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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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대구직할시 서구 평리
선행(善行) 차주화(車柱樺) 15세

고등학교(高等學校) 1학년(學年)에 재학 중(在學中)인 차주화군(車柱樺君)은, 평소(平素) 성품(性品)이 온순(溫順)하고 착할 뿐만 아니라 가정(家庭)과 이웃 학교생활(學校生活)에서도 항상 남을 위하고 자기(自己)를 희생(犧牲)한다는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을 지니면서 살아온 탓으로, 그에 대하여 언제나 칭찬(稱讚)이 그칠 날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근면성실(勤勉性實)했던 차군(車君)은 매일(每日)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自己) 집 안팎은 물론(勿論), 이웃집 앞과 골목 안까지 깨끗이 청소(淸掃)하여 동리(洞里) 일원(一圓)에 청소의식(淸掃意識)을 깊이 심어 주기도 했다. 

특(特)히 1983년(年) 7월(月)에는 집 주변(周邊) 물고인 웅덩이를 손수 메워, 파리나 모기의 서식처(棲息處)를 깨끗이 없애 버리기도 한 차군(車君)은, 담벼락의 낙서(落書)를 깨끗하게 지워 버리는 미화작업(美化作業)에도 솔선수범(率先垂範)했다. 

낙서(落書)를 지우면 다시 낙서(落書)를 하고, 지저분한 광고(廣告)를 떼어 버리면 다시 또 광고(廣告)가 나붙는 등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단 한 시도 담벽이 깨끗한 날이 없었지만, 차군(車君)은 끝이 보일 때까지 지워 버리고 닦아내는 집념(執念)을 보여, 끝내 낙서(落書)와 불법벽보(不法壁報)의 뿌리를 뽑아 내는 기쁨을 동민(洞民)들이 맛보게 하였다. 

학교(學校)에서 귀가(歸家)할 때 장 보따리가 무거운 아주머니라도 발견(發見)하면 손수 들어다 주기도 한 그는, 어느 날 길 잃은 노인(老人)을 가까스로 집까지 모셔다 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자신(自身)도 길을 잃고 자정(子正)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웃지 못할 일화(逸話)도 지니고 있다. 

학교생활(學校生活)에서도 어려운 일에는 항상(恒常) 솔선(率先)해서 나서기도 했는데, 특(特)히 매일(每日) 아침과 오후(午後)에 실시(實施)하는 자율학습시간(自律學習時間)에는 학습분위기(學習雰圍氣) 조성(造成)에 최선(最善)을 다하여, 언제나 선생(先生)님으로부터 칭찬(稱讚)받는 일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自身)보다 어려운 급우(級友)가 도시락을 지참(持參)하지 못하고 등교(登校)했을 때는, 자신(自信)의 도시락을 기어코 같이 나누어 먹는 따뜻한 우정(友情)을 베푼 일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린 소년(少年)답지 않게 차군(車君)은 효심(孝心)도 대단하였다. 

간혹 부모(父母)님 가운데 어느 한 분이 병석(病席)에 눕기라도 하면 꼬박 지켜 앉아서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였고, 그 밖의 잔심부름을 자청(自請)해서 하는 등 그의 형(兄)님들이 미안(未安)할 정도로 효행(孝行)을 독차지하여 실천(實踐)했다. 

부모(父母)의 생신일(生辰日)을 맞을 때 마다 저축(貯蓄)한 돈으로 선물(膳物)을 사다 드리기도 한 차군(車君)은, 형(兄)님들에 대(對)해서도 어버이를 대(對)하듯 모든 일에 고분고분 순종(順從)하는 영리(怜悧)함을 보이기도 했다. 

1984년(年) 교내(校內) 영어암송대회(英語暗誦大會)에서 장려상(奬勵賞)과 교내(校內) 제도실기대회(製圖實技大會)에서 3등상(等賞)을 받기도 한 차군(車君)은, 오늘도 친구(親舊) 몇몇과 더불어 비닐봉지를 들고 어디론가 급(急)히 뛰어가고 있었는데, 어디를 급(急)히 달려가느냐는 물음에 차군(車君)은 이렇게 말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어서야 되겠어요? 자연보호(自然保護)는 말보다 행동(行動)으로 실천(實踐)해야 하는 것이예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