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장인섭(張仁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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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문경군 문경읍
선행(善行) 장인섭(張仁燮) 61세

자효쌍친락(子孝雙親樂)이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듯이 자식(子息)이 효도(孝道)하면 양친(兩親)이 즐거워하고, 또한 집안이 화목(和睦)하면 만사(萬事)가 형통(亨通)하는 법이다. 

부부(夫婦), 부자(父子), 형제(兄弟)의 관계(關係)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가정(家庭)이 질서(秩序)와 조화(調和)를 이루어, 화목(和睦)하고 단락(團樂)하면 건전(健全)한 가정(家庭)을 이루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當然)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어버이가 자식(子息)을 사랑하고 아끼며, 자식(子息)이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고 효도(孝道)하며 형제(兄弟)가 우애(友愛)로써 화목(和睦)하며 건전(健全)한 가정생활(家庭生活)을 경영(經營)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根本)이 되는 경로사상(敬老思想)이 절대불가결(絶對不可缺)의 열쇠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경로사상(敬老思想)을 누구보다 몸소 실천(實踐)에 옮기고 있는 모범인(模範人)이 있으니, 그가 곧 당년(當年) 61세(歲)의 장인섭씨(張仁燮氏)이다. 

장씨(張氏)는 91세(歲)의 노부(老父)와 89세(歲)의 노모(老母)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 양친(兩親)이 새벽에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지극(至極)한 효성(孝誠)으로 봉양(奉養)하고 있어, 세상(世上)에 둘도 없는 효자(孝子)란 칭찬(稱讚)과 더불어 마을의 화제(話題)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회관(老人會館)을 신축(新築)하는데 핵심적(核心的)인 역할(役割)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작년(昨年)이었다. 

농한기(農閑期)나 동절기(冬節期)에 일정(一定)하게 모여서 놀 곳이 없어 이리저리 방황(彷徨)하고 있는 노인(老人)들의 딱한 사정(事情)을 눈여겨 본 장씨(張氏)는 자신(自身)이 대지(垈地)를 기꺼이 희사(喜捨)하여 그 곳에다 노인회관(老人會館)을 건립(建立)토록 일차적(一次的)인 여건(與件)을 조성(造成)하여 주었다. 

노인회(老人會)에서는 그의 고마운 뜻을 박수(拍手)로 받아들여 정부지원(政府支援) 시멘트와 주민(住民)의 노력부담(努力負担)으로 마침내 숙원사업(宿願事業)이었던 20여평(餘坪)의 아담한 노인회관(老人會館)을 준공(竣工)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장씨(張氏)는 다시 이런 제의(提議)를 노인(老人)들에게 했다. 

"밤낮 모여서 화투나 장기, 그렇지 않으면 술타령으로 세월(歲月)을 보내고 있는 이와 같은 악습(惡習)을, 우리 모두 불살라 버리고 새 출발(出發)해 봅시다."라는 장씨(張氏)의 건설적(建設的)인 제안(提案)으로 농한기(農閑期)에는 동민(洞民)들이 모두 동원(動員)되어 싸리나무를 해 오기로 결정(決定)이 되었다.

싸리나무의 용도(用途)는 나물바구니와 망태기 등을 만들기 위한 자재(資材)였는데, 이로써 부업(副業)의 열정(熱情)은 마침내 온 마을에 퍼져, 노인회관(老人會館)이 부업(副業)의 현장(現場)이 되었을 정도로 기쁨이 넘치게 되었다.

장씨(張氏)는 집념(執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적(史跡) 147호(號)인 '문경(聞慶)새재'가 오손(汚損)되어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 끝내, 노인자연보호회(老人自然保護會)를 조직(組織)하여 매일(每日)아침 조기청소(早起淸掃)와 더불어 훼손된 곳을 보수(補修)하는 등, 남다른 애향심(愛鄕心)으로 사적지(史跡地)를 지켜 나가고 있다.

'늙은 장군(將軍)은 전쟁(戰爭)에서 조급(躁急)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장씨(張氏)는 오늘도 노인회(老人會)의 획기적(劃期的)인 발전(發展)을 위하는 그 무슨 골돌한 생각에 잠기면서 노인회관(老人會館)으로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