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김외철(金外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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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구미시 원평동
선행(善行) 김외철(金外鐵) 38세

김외철씨(金外鐵氏)는 '사랑의 이발사(理髮師)', '인간(人間) 신호동(信號燈)'이라는 두 가지 별명(別名)이 붙을 정도로 애향심(愛鄕心)도 두텁고 경로사상(敬老思想)도 두터운 모범장년(模範壯年)이다. 

덕행(德行)은 나 자신(自身)에게 힘을 주고 남에게도 덕행(德行)을 고취(鼓吹)한다는 말도 있듯이 덕(德)은 향기(香氣)와 같다고 하겠다. 

"착한 일을 하지 아니하면 길(吉)이 흉(凶)으로 변(變)하고, 착한 일을 하면 재앙(災殃)이 도리어 복(福)으로 화(化)한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덕행(德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조그마한 이발소(理髮所)를 경영(經營)하고 있는 그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形便)이지만, 자기(自己)가 겪어 온 지난날을 회상(回想)하면서 무엇인가 남을 위해 돕는 일을 항상(恒常) 머리 속에 그리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우선 그는 마을 청년회(靑年會)에 가입(加入)한 후 마을의 길흉사(吉凶事)를 돕는 한편, 마을 청년(靑年)들을 설득(說得)시켜 1979년(年)부터 노인(老人)잔치를 개최(開催)하는 첫 번째의 성과(成果)를 거두어 지금까지 6회(回)에 걸쳐 실시(實施)한 바 있는데, 회비(會費)가 부족(不足)할 때는 사비(私費)를 털어 행사(行事)를 유종(有終)의 미(美)로 이끌도록 힘써 왔다. 

뿐만 아니라, 매월(每月) 이발소(理髮所)의 정기휴일(定期休日)을 이용(利用)하여 노인회관(老人會館)에서 80여명(餘名)의 노인(老人)들을 상대(相對)로 이발(理髮)을 해 주고 1인당(人當) 봉사비(奉仕費)로 500원씩을 받은 바 있는데, 김씨(金氏)는 다시 그 돈을 고스란히 노인회(老人會) 기금(基金)으로 돌려 주는 방식(方式)으로 하여, 지금까지 300만(萬)원을 기증(寄贈)하여 노인(老人)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기도 하였다. 

그 후(後) 1983년(年)부터는 동민(洞民)의 친선도모(親善圖謀)를 위한 체육대회(體育大會)를 개최(開催)하여 동민단합(洞民團合)의 새로운 바탕을 조성(造成)해 주었는가 하면, 영세민(零細民) 박세목(氏)를 찾아서 연탄(煉炭) 100장을 전(傳)해주는 등 지극(至極)한 그의 사랑은 거룩하기만 하였다. 

"그 분은 문자(文字) 그대로 '사랑의 이발사(理髮師)'인 동시(同時)에 '인간(人間) 신호등(信號燈)'입니다. 경로당(敬老堂)에다 노인(老人)들이 즐겨 놀 수 있도록 각종(各種) 오락기기(娛樂機器)도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시(隨時)로 찾아와서 술과 음식(飮食)을 대접(待接)하는 등 친부모(親父母) 이상(以上)으로 노인(老人)들을 공경(恭敬)하는 바람에 우리들은 몸둘 바를 모를 정도입니다. 너무나 고맙다는 말외(外)에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란 어느 노인(老人)의 찬사(讚辭) 그대로, 김씨(金氏)야말로 자신(自身)보다는 남을 위해서 살고 있는 사랑의 천사(天使)였다.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彷徨)하는 노인(老人)을 발견(發見)한다든가 또는 망령기(妄靈氣)를 부리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노인(老人)이라도 목격(目擊)하면, 밤을 세워서라도 손수 그를 집까지 무셔다 주는 등, 별명(別名) 그대로 '인간 신호등(人間 信號燈)'의 역할(役割)을 해 온 일도 불지기수(不知其數)였다. 

남을 비추어 주는 한 줄기 촛불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외철씨(金外鐵氏), 그는 오늘도 한 아름의 선물(膳物)을 사 들고 바쁜 걸음으로 경로당(敬老堂)으로 가고 있었다.